초등학교 시절을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창으로 넘어가는 도 경계인 고갯마루 아래 산골에서 보냈다. 동네 앞으로 3번국도 비포장 신작로가 지나가기는 하지만 동네에 간판도 없이 가정집에서 물건 몇 개 갖다놓고 운영하는 구멍가게 한 개 밖에 없는 오지였다. 과자 같은 먹거리들은 특별한 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먹는 간식이었다. 그것도 눈깔사탕이나 라면땅 정도였다. 한창 먹성이 좋을 아이들에게 주전부리가 필요했다. 아이들은 동네 형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수받은 노하우로 자연에서 다양한 주전부리 거리를 구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이른 봄에는 갓 올라온 찔레(1) 햇가지를 꺽어 먹고, 삐삐(2) 새 순을 뽑아 껌처럼 씹었다.
봄 꽃이 피기 시작하면 진달래꽃(참꽃, (3)), 아카시아꽃을 따먹었고 여름이 되면 꿀풀(4), 사루비아 꽃의 꿀을 빨아 먹었다.
여름 산에 가면 보리똥 열매(보리수, (5)), 산딸기(6), 개암(7), 다래(8), 으럼(9)을 찾아 다녔다. 보리똥 열매를 너무 많이 먹어서 똥꼬가 찢어지는 배변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도 했다.
학교 갔다오면 책가방을 방에 던져 놓고 누런 주전자 하나 들고 뽕밭을 다니면서 오디(10)를 따 모았다.
간혹 주인없는 또는 주인이 무관심한 앵두나무의 빨간 앵두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들판에 방치된 호도나무에서 짙푸른 색으로 잘 익은 씨알 굵은 호도(11)를 따거나 땅에 떨어진 호두를 주워서 개울가에 둘러 앉아 녹색 과육 껍질을 바위에 갈아서 벗기면 손바닥이 불그스럼하게 물들어 여름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들판의 가시있는 풀, 싱기(사광이풀, 며느리배꼽 (12)) 이파리는 신맛을 내는 주전부리였고, 까맣게 익어가는 까마중(13) 열매도 알싸하면서 달착지근한 좋은 간식거리였다. 까마중 열매도 덜 익은 열매나 너무 많이 먹으면 두통, 구토를 유발하는 독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을에는 여름내내 녹말로 가득 채워져 팔뚝만하게 자란 찰진 칡 뿌리를 캐서 쇠고기 장조림 찢듯이 찢어서 씹으면 쌉싸름하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녹말즙이 입 안 가득 채워졌다. 수칡은 즙이 거의 없기 때문에 칡 덩굴을 보고 암칡을 잘 골라야 한다. 좋은 칡 뿌리는 대개 산 비탈 등에서 땅 속 깊숙히 넓게 뻗어 있어서 여러 명이 낫과 곡괭이를 이용해서 덤불을 걷어내고 땅을 파헤치는 장시간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한참을 파헤쳐 굵고 찰진 칡뿌리를 발견하면 산삼을 발견한 기분이다. 긴 뿌리를 다 캐갈 수 는 없기 때문에 굵은 부위 1~2 m 를 골라 톱으로 잘라서 어깨에 들쳐 메고 간다. 집에 오면 손도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잘라서 분배한다.
찔레 (1)
삐삐 (2)
진달래 (3)
꿀풀 (4)
보리수 (5)
산딸기 (6)
개암나무(7)
학명은 Asian Hazul, 자작나무과 개암나무속이다. 개암나무의 열매가 헤이즐넛이다. 엄격히는 헤이즐넛은 유럽개암나무 열매 (Common Hazul)이다.
어린 잎에는 검은색 무늬가 있는데 자라면서 없어진다. 말미잘 같은 빨간 암술의 암꽃, 자작나무과의 다른 종들처럼 아래로 늘어지는 수꽃.
개암껍질이 매우 단단해 돌 등으로 깨야 한다. 개암 속 열매는 다른 견과류와 같이 고소한 맛이다.
다래덩굴(8)
익으면 짙은 녹색이 되고 말랑말랑해진다. 크기는 작지만 자르면 키위처럼 검은씨가 박혀있고, 매우 달다.
으럼덩굴(9)
으럼덩굴은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열매는 바나나처럼 껍질이 벗겨지며 속에는 부드러운 하얀 속살이 있다.
오디 (10)
호도(11)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 (12)
사광이풀은 잎의 배꼽 위치에 줄기가 붙어 있고, 사광이아재비는 잎 아래끝에 붙어 있다. 꽃은 고마리 꽃과 닮았고, 열매는 동글동글한 파랑색 열매가 열린다.
까마중 (13)